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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를 모시고 어른을 방치하면?

덕암 김균식 | 기사입력 2021/06/15 [08:58]

[칼럼] 개를 모시고 어른을 방치하면?

덕암 김균식 | 입력 : 2021/06/15 [08:58]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다시 아이를 낳아 어른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어른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신토불이는 구시대적 아제의 잔소리로 자리매김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검증없는 반입이 시작됐다.

개울가 토종 어류는 매운탕거리가 되고 겨울잠 자는 개구리도 보신용으로 남획되지만 열대어는 신주단지 모시듯 먹이도 주고 추울세라 수족관 히터까지 설치해준다.

참새는 포장마차 술 안주가 되고 꿩은 만두요리의 재료가 되어도 앵무새나 다양한 외래 조류는 새장에 모셔두고 늘 모이와 물을 갈아주며 보살핀다.

물고기나 날짐승 뿐이랴. 쥐 새끼는 더러워 해도 햄스터는 귀여워한다. 어쨌거나 각자의 취향이니 이쯤하고 요즘 들어 가장 살만 해진게 반려견이다. 이미 천만 가구의 견주가 통계 수치로 공공연히 알려지고 있으니 개에 대한 일장일단을 살펴보자.

먼저 토종개는 보신탕집에 가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보양식중 하나로 손꼽힌다. 과거에는 마당이 그라운드요 대문밖에 울타리를 경계선으로 집을 지키는 충실한 집 지킴이었지만 요즘 같은 아파트 단지나 공동주택들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느 날 부터 하나 둘씩 토종개는 사라지고 외래종의 득세가 붐을 이루고 있다.

장소 또한 마당은 물론 안방과 거실까지 점령하며 누가 주인인지 구분 못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방 접종은 물론 치석제거 껌, 미용, 목욕, 영양 간식 등 사람 하나 키울 만큼의 비용과 정성이 들어간다.

혹여 편찮으실라 털 빗는 일부터 공원에 갈 때는 유모차에 모시고 가는 경우도 있고 애견센터를 지날 때면 아낌없이 고급 간식을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득 달밤에 어느 한 집 개가 짖으니 밝을 달을 보고 온 동네 개가 다 짖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너도나도 개를 키우다 보니 운전석에 앉혀두고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하는가 하면 대형견들은 사람까지 물어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막상 키워보니 뒤처리나 비용이 만만찮아 유기시키는 경우도 허다한데 개를 소재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호라는 명분으로 봉사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이쯤하고 개가 인간과 친근한 반려견이기는 하나 개는 개다. 중요한건 사람 중에서도 사람을 낳고 키워 주신 부모에 대한 관심과 배려인데 더도 덜도 말고 개보다 별반 더 나을 게 없다면 과언일까. 언제부터인가 개는 키워도 부모는 못 모시는 아니, 안 모시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부모에게는 명절과 생신을 포함 일 년에 3번을 가도 대단한 책임을 완수한 마냥 생색을 내도 개한테는 하루도 빠짐없이 애지중지 하고도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다. 부모 손발톱은 한 번도 안 깎아 드리면서 강아지 털 빗기와 발톱손질은 수시로 한다.

개 목욕은 수시로 해주면서 부모의 등은 얼마나 밀어드렸을까. 개가 똥을 싸면 배변봉투까지 들고 다니며 치우지만 혹여 부모가 똥을 싸면 그렇게 치울 수 있을까.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견주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효자·효부도 많고 사람의 귀함을 중히 여기는 사람도 많으니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문제는 조그마한 강아지 때 귀엽다고 키우다가 싫증이 나거나 아프고 성가신 점이 두드러지면 짐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화풀이도 하고 심지어 학대까지 하는 등 말 그대로 가지고 노는 개란 뜻의 애완견이 되고 만다.

유사한 점은 개를 학대하듯 노인도 방치하고 무관심하며 짐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렇지 않겠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개는 유기견센터로 가고 노인은 요양병원이나 기타 시설로 보내진다. 15일 있다가 안락사 시키는 것과 종신 때까지 요양보호사들이 지켜준다는 것만 다르지 달갑지 않기에는 대동소이하다.

거두절미 하고 이렇듯 어르신을 개와 비교하는 것은 오늘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비교였다면 최고의 대안을 찾아보자.

한 나라의 가치를 평가 할 때는 경제, 군사, 문화, 복지 등 많은 분야에서 얼마나 찬란한 성과를 달성했는지를 보고 존경과 인정과 부러움을 살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 어떤 분야에서도 밀릴 만한 게 없지만 가장 높은 가치로 인정받았던 분야가 지금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게 바로 어르신에 대한 공경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활동하던 사업가와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다. 광활한 중국에서는 부모의 안심과 건강을 위해 멀리 있는 자식이 직장을 그만두고 낙향한다거나 부모를 위해서라면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효심이 중국인들의 자부심이라고 한다.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의 효 정신은 중국에서 볼 때 매우 부럽고 대단한 점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한편 부끄럽고 민망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효도에 대한 의미를 우리들 스스로 느끼지 못했지만 제3국에서 볼 때 환산할 수 없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만약 노인학대에 대한 사건들이 외신들을 통해 알려진다면 과연 한국에 대한 민족혼이나 정신적 가치관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까.

얼마 전 비오는 날 모 도시의 무료급식소에 길게 줄을 선 어르신들을 보며 거지 동냥하듯 이런 풍경과 환경밖에 조성할 수 없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녕 답이 없는 것일까. 다른 민족으로부터 존경받을 여지는 있는데 방법이 병행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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